© Photo  by Kim Dong Jin
 

또 다른 도시

Another City

2018. 3.31 ~  4.14

부산사견록

​문진우, 김동진, 정남준

2018. 7.18 ~ 7.28

​갤러리 브레송

〈부산 사견록〉, 화학적 읽기를 열어주는 경계의 향연

 

이광수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 교수)

사진은 과학으로 출발하여 지금은 예술로까지 가 있다. 그 사이 숱하게 많은 인식의 체계가 걸쳐 있다. 증명사진이나 엑스레이 사진은 철저한 과학이고 선후의 여러 보정을 통해 존재를 집어넣기도 하고 없애버리기도 하는 것은 철저한 예술이다. 어느 것이 더 가치 있고 어느 것이 덜 가치 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 하다. 그 사이에 흔히들 말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이 있다. 그렇지만 소위 다큐멘터리라는 것 또한 그 범주가 매우 넓고 이질적이어서 무엇이 좋은 다큐멘터리이고 어떤 다큐멘터리 사진이 더 작품성을 갖는지를 묻는 것도 허망하다. 그것은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기록이고 그 기록을 하는 것이 다시 과학에서부터 예술에까지 걸쳐 있기 때문이다. 결국 과학적 기록을 추구하는 다큐멘터리는 그 틀 내에서 평가해야 하고, 예술 혹은 문학적 기록을 추구하는 다큐멘터리는 또 그 틀 내에서 평가해야 한다.

 

사진은 결국 말하기와 읽기다. 그런데 그 말하기와 읽기 또한 과학과 예술 사이 어느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사진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적확하게 읽어내야 하는 사진이 있는가 하면 반드시 그럴 필요가 없다거나 심지어는 그렇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진가의 작업까지도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을 추구하면서 과학적 기록성과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작업은 역사성과 사회성을 읽어야 한다. 사진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읽고 따라줘야 그 사진을 제대로 읽는 것이다. 그렇지만 같은 다큐멘터리 사진이라지만 문학적 혹은 예술적 기록을 담고자 하는 사진은 반드시 그 사진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필요는 없다. 그와 일치하는 것도 좋지만 독자가 새롭게 해석해 보는 것도 좋은 사진 읽기다.

 

문진우, 정남준, 김동진이라는 세 사진가가 구성하는 부산 사견록은 부산을 대상으로 하는 서로 다른 사진에 대한 접근 태도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풀이하는 바에 따라 그 뜻을 달리 할 수 있겠지만, 기획자는 ‘사’자가 생각 사(思)자라 했다. 생각하고 보고 기록한다는 의미다. 세 사람의 작품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에 아주 좋은 조어다. 사진이란 결국 과학으로 갈 것인지 예술로 갈 것인지 그 사이 인문학 어느 경계로 갈 것인지 생각을 해야 출발이 가능하다. 대상이 인도의 걸승인 것은 그 대상이 연꽃인 것과 다를 바 없는 그저 소재주의에 얽매인 사진일 뿐이다. 그 아름다움이나 기이함을 담아내면 소위 생각하는 수준이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다. 대상이 소재주의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사진가는 생각 사를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우선 고민하는 단계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그리고 나면 대상을 깊이 보는 단계에 접어들 것이다. 저 대상을 어떤 이미지로 만들 것인지를 결정하는 단계다. 소위 사진의 문법을 따를 것인지 그렇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이 두 단계를 거치고 나면 그 사진은 기록이 된다. 인과 관계가 분명한 기록이 되든지 아니면 판단을 할 수 없는 에포케를 동원해야 하는 메타 역사가 되든지 할 것이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위치를 정하는 기록이 된다.

 

문진우의 사진은 부산의 아주 오래된 마을, 아직도 그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매축지라는 장소를 기록한 것이다. 문진우가 기록한 그 장소성은 사람이 이 땅에서 추방되어야 하는 슬픔을 기록한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그림자 안에 있거나 온전치 않은 형태로 나타난다. 사진가의 슬픔이 배어 있으니 슬픔으로 읽어내지 않을 도리가 없지만 그 읽기는 과학적 읽기가 아닌 문학적 읽기다. 정남준은 노동자의 삶을 담았다. 인간은 일 하는 기계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임을 말하는 전형적인 사회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노동이 정당하게 인정되지 않은 이 세상에서 사는 노동자의 모습을 어둡게 그리지 않은 것은 역설적이거나 그들이 세계의 주체임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 것이다. 김동진의 사진은 역사 인식이 강한 사진이다. 세상은 일반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게 아니고 개별적으로 보인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보편이란 과학성을 숭모하다 보니 사람이 소외되고 세계가 비정상이 되어 감을 말하고자 한다. 그래서 다른 이들은 세계를 그렇게 보지만 나는 세계를 이렇게 본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그의 사진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진의 문법으로부터 벗어나 있음은 바로 그런 그의 역사 인식 때문이다.

 

〈부산 사견록〉은 부산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를 말하는데 부산을 도구로 했을 뿐이다. 이 서로 다른 세 시선을 한 데 묶은 것은 단순한 물리적 결합이 아닐 것이다. 그 셋이 엮어내 만들어진 결과는 화학 반응을 통해 새로운 것으로 나올 것이다. 그 화학 반응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기획자의 의도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읽는 독자의 머리와 가슴에 달려 있다.